Chapter 4
황무지
그날 밤, 나는 잠을 못 잤다.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눈을 감아도 머릿속에서 코드가 돌아갔다. 아까 본 그 HTML, CSS, JavaScript가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됐다.
이게 가능하다고?
동작한다. 내가 원하는 걸 말하면, 뭔가가 나온다. 물론 아직 조잡하다. 디자인은 엉망이고, 기능도 단순하다. 에러 처리도 안 되어 있다. 제대로 된 서비스라고 부르기엔 한참 멀었다.
하지만 ‘되긴 된다’.
0에서 1이 됐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 뭔가가 생겼다.
머릿속에 그림이 하나 떠올랐다.
광활한 황무지.
아무것도 없는 땅. 먼지만 날리는 평원. 지평선까지 아무것도 안 보인다. 나무 한 그루 없다. 물 한 방울 없다. 생명의 흔적이 없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다.
이 땅 위에 뭔가를 세울 수 있다. 건물을 올릴 수 있다. 도시를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할 수 있다.
나는 이 황무지의 설계자다.
설계자라니, 거창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맞는 비유다.
나에게는 비전이 있다. 이 땅에 뭘 세워야 하는지 안다. 어떤 건물이 필요한지, 어떤 길을 내야 하는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청사진이 머릿속에 있다.
문제는 혼자서는 흙 한 삽 못 푼다는 것이었다.
설계자가 손으로 직접 벽돌을 쌓진 않는다. 설계자는 명령을 내리고, 뭔가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있어야 한다.
근데 지금까지 내 명령은 허공에 메아리쳤다. “서비스가 있으라” 해도 서비스는 없었다. “앱이 있으라” 해도 앱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용사가 있다.
내 명령을 듣는 누군가가 생겼다. “계산기가 있으라” 했더니, 계산기가 생겼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존재하게 됐다.
용사는 강하다. 엄청나게 강하다.
일단 빠르다.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코드가 쏟아져 나온다. 개발자를 고용하면 며칠 걸릴 일이 몇 초 만에 끝난다.
그리고 지치지 않는다. 밤새 시켜도 불평이 없다. 추가 비용도 없다. 수정을 요청해도 “추가 금액이요”라고 안 한다.
지식도 방대하다. HTML도 알고, CSS도 알고, JavaScript도 알고, 아마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언어들도 다 아는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다.
명령을 던지면 즉시 달려가는데, 가끔 엉뚱한 방향으로 뛴다. “계산기 만들어”라고 했는데 과학 계산기를 만들어 온다든가. 시키지도 않은 그래프 기능을 붙여놓고 뿌듯해한다든가.
분명 간단한 걸 시켰는데 복잡하게 만들어 온다. “버튼 하나”라고 했는데 버튼 다섯 개에 드롭다운 메뉴까지 달아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용사는 기억력이 짧다.
어제 한 이야기를 오늘 기억 못 한다. 아까 정한 규칙을 조금 전에 잊어버린다.
강력하지만 불완전한 존재.
이게 내가 소환한 용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