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롬프트보다 중요한 것

Chapter 5

첫 번째 깨달음

며칠 후, 나는 용사에게 말을 걸었다.

“어제 만든 계산기에 뺄셈 기능 추가해줘.”

“네! 만들어볼게요.”

용사의 대답은 언제나 밝았다. 열정이 넘쳤다. 약간 신입사원 같은 느낌이랄까. 일을 시키면 눈을 빛내며 “해볼게요!”라고 대답하는.

그리고 코드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코드를 보는 순간 알았다. 이건 어제 만든 계산기가 아니었다. 구조가 완전히 달랐다. 스타일도 달랐다. 변수 이름도 달랐다.

완전히 새로운 계산기였다.

더하기와 빼기가 둘 다 있긴 했다. 하지만 어제 작업한 디자인은 다 사라졌다. 어제 조정해둔 버튼 크기, 입력창 위치, 색상. 다 없어졌다.

“아니, 어제 만든 거에 추가하라고.”

“아… 잠깐만요. 어제 만든 게 뭐였죠?”

용사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제야 이해했다.

이 용사는 강력하지만,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매번 새로 시작한다. 어제의 대화는 오늘 존재하지 않는다. 5분 전에 정한 맥락도, 채팅창을 닫으면 증발한다.

용사에게는 과거가 없다. 영원한 현재만 있다. 지금 이 순간의 대화만 존재하고, 그 전의 모든 것은 망각의 저편이다.

처음엔 화가 났다.

뭐야 이게. 어제 그렇게 공들여 만들었는데. 스타일도 조정하고, 버튼 위치도 바꾸고, 폰트도 고르고. 그게 다 허사였어?

하지만 잠깐.

화를 내봤자 소용없다. 용사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 이건 용사의 본성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게 이 존재의 한계다.

그렇다면.

이건 용사의 문제가 아니다. 내 문제다.

내가 맥락을 제공해야 한다.

“이 코드에 뺄셈 기능 추가해줘”라고 하면서, ‘이 코드’를 함께 보여줘야 한다. 어제 만든 걸 내가 저장해두고, 오늘 다시 보여줘야 한다.

내가 기억해야 한다. 내가 이어붙여야 한다.

용사는 도구다.

강력한 도구.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도구. 하지만 도구는 방향을 모른다. 목적지를 모른다.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다.

방향은 내가 정해야 한다.

어제의 맥락을 내가 기억하고, 오늘의 방향을 내가 제시하고, 내일의 목표를 내가 설정해야 한다.

용사는 달릴 뿐이다. 어디로 달릴지는 설계자가 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깨달음이었다.

용사가 멍청한 게 아니다. 용사는 그냥 그렇게 설계된 것이다. 맥락을 유지하는 건 용사의 역할이 아니다. 그건 나의 역할이다.

나는 그날부터 메모를 시작했다. 오늘 뭘 만들었는지, 코드가 어떻게 생겼는지, 다음에 뭘 해야 하는지. 용사가 기억 못 하니까, 내가 기억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