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선택
이 황무지에 뭘 세울 것인가.
용사를 다루는 법을 조금 알게 됐다. 한 번에 하나씩, 구체적으로, 맥락을 제공하며. 완벽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대화가 됐다. 뭔가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럼 뭘 만들지?
아이디어는 많았다. 너무 많았다. 10년간 쌓인 아이디어들이 줄을 서서 손을 들었다.
“나! 나 먼저!” “아니야, 나를 만들어!” “내가 더 좋은 아이디어야!”
그중 하나가 유독 크게 소리쳤다.
10년 전부터 품어온 꿈의 프로젝트. 개인 재무 관리 앱. 지출을 추적하고, 예산을 세우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분석하고, 미래 자산을 시뮬레이션하는. 제대로 된 개인 금융 비서.
예전엔 엄두도 못 냈다. 너무 복잡했다. 사용자 정보 저장, 보안, 은행 데이터 연동, 그래프 그리기… 개발자 여러 명이 몇 달은 붙어야 할 규모였다.
하지만 이제 용사가 있다.
“용사야, 이거 만들 수 있어?”
“네! 도전해볼게요. 먼저 사용자 인증 시스템부터 만들고, 그 다음 지출 입력 화면, 카테고리 분류, 월별 리포트, 예산 설정, 알림 시스템, 그리고…”
용사가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끝이 없었다.
심장이 뛰었다. 진짜 이걸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가 발목을 잡았다.
이전에도 이런 적 있었다. 거대한 꿈을 품고, 야심차게 시작하고, 어느 순간 지쳐서 포기했다. 그때마다 이유는 같았다. 너무 컸다. 끝이 안 보였다. 완성이라는 게 뭔지 몰랐다.
용사가 생겼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될까?
용사는 강하지만, 기억하지 못한다. 복잡한 프로젝트일수록 맥락 관리가 어려워진다. 수십 개의 파일, 수백 개의 함수, 서로 얽힌 의존성. 내가 그 모든 걸 기억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솔직히, 두려웠다.
10년간 품어온 꿈이다. 이걸 시도해서 또 실패하면? 이번엔 변명할 게 없다. “코딩을 못해서”라는 핑계가 사라졌으니까. 용사가 있는데도 실패하면, 그건 순전히 내 탓이다.
꿈의 프로젝트를 시험대에 올릴 용기가 없었다.
그렇다면 대안은?
작은 것. 확실히 완성할 수 있는 것. 실패해도 타격이 적은 것.
하지만 그건… 꿈을 미루는 거 아닌가? 또 “다음에”를 외치는 거 아닌가?
나는 두 갈래 앞에 서 있었다.
A. 꿈의 프로젝트
- 10년간 품어온 진짜 하고 싶은 것
- 하지만 복잡하고, 실패하면 또 좌절
B. 작은 첫 걸음
- 완성 가능성 높음
- 하지만 꿈과는 거리가 있음
며칠을 고민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10년간 “다음에”를 반복했다. 완성해본 적이 없다. 한 번도. 그게 문제였다.
꿈의 프로젝트가 중요한 게 아니다. ‘완성’이라는 경험이 필요하다.
작은 거라도 끝까지 만들어본 사람과, 큰 꿈만 품고 하나도 완성 못 한 사람. 둘 중 누가 결국 꿈을 이룰까?
완성 경험이 없으면, 꿈의 프로젝트도 결국 미완성으로 끝난다. 그 패턴을 깨야 한다. 먼저 작은 걸 끝내야 한다. 그래야 큰 것도 끝낼 수 있다.
결정했다.
단순하고, 실용적이고, 특정 문제를 푸는 것.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 많은 사람이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쓰는 사람에게는 확실하게 도움이 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완성할 수 있는 것.
사람들은 매일 계산한다.
급여가 얼마인지. 세금이 얼마인지. 대출하면 이자가 얼마인지. 투자하면 수익이 얼마인지. 월세로 살지 전세로 살지. 이 옵션을 고를지 저 옵션을 고를지.
복잡한 수식을 머리로 굴리다 지친다. 검색하면 정보는 나온다. 세율이 몇 퍼센트인지, 이자율이 어떻게 계산되는지. 하지만 그걸 직접 계산해야 한다. 계산기를 두드리거나, 엑셀을 열거나.
그 계산을 대신해주는 도구.
입력만 하면 결과가 나오는. 복잡한 수식을 몰라도 되는. 그냥 숫자 넣고 버튼 누르면 답이 나오는.
이것이 이 세계의 첫 번째 건물이 될 것이다.
꿈을 포기한 게 아니다. 꿈을 이루기 위한 첫 걸음이다.
용사야, 우리 첫 번째 퀘스트가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