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명명하지 않은 세계
나는 이 황무지를 뭐라 불러야 할지 몰랐다.
보통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이름부터 짓는다. 멋진 이름, 기억에 남는 이름, 도메인 구할 수 있는 이름. 이름을 짓고, 로고를 만들고, 색상을 정하고.
근데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직 이름을 붙일 만큼 뭔가를 만들지 못했으니까.
예전에도 이름은 잘 지었다. 번듯한 이름, 그럴싸한 로고, 멋진 랜딩 페이지. 그런 건 잘 만들었다. 문제는 그 뒤였다.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었다. 껍데기만 화려하고 속이 텅 비었다.
이번엔 순서를 바꾸기로 했다.
이름은 나중에 붙이기로 했다. 이 세계가 진짜 세계가 되었을 때. 주민이 살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 이 서비스를 쓰고, 도움이 됐다고 말할 때.
그때 가서 이름을 붙여도 늦지 않다.
아니, 그때 이름을 붙이는 게 맞다. 이름을 붙일 자격을 얻은 후에.
지금은 그냥 ‘그 세계’다.
아직 아무것도 없는, 하지만 뭔가가 될 수 있는 곳.
나와 용사가 함께 만들어갈 곳.
설계자는 황무지를 바라봤다. 먼지가 날리는 평원. 지평선까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이제 그 풍경이 다르게 보인다.
저기에 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저기에 길이 날 것이다. 저기에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아직은 상상 속에만 있지만, 곧 현실이 될 것이다.
용사가 옆에 섰다.
“뭘 만들까요?”
설계자가 대답했다.
“계산기. 근데 그냥 계산기 말고. 사람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계산기.”
용사가 눈을 빛냈다.
“만들어볼게요.”
세계 창조가 시작됐다.
하지만 설계자는 아직 몰랐다.
용사는 강했다. 하지만 강한 만큼, 새로운 위험도 함께 왔다는 것을.
첫 번째 건물을 세우는 순간, 그 위험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설계자의 비망록: 1부를 마치며
용사 다루기 체크리스트
- 맥락은 내가 저장한다 (용사는 기억 못 한다)
- 한 번에 하나만 시킨다
- “좋게” 말고 “파란색 버튼”처럼 구체적으로